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배두나, “고집스러운 선택의 작업”

-촬영이 한겨울에 진행됐는데 얇은 의상 하나만 입고 춥지 않은 척 연기하기도 힘들지 않으셨나요?
일본은 정말 습하게 추워요. 뼛속까지 시린 추위였어요. 처음 의상을 피팅하러 갔는데 옷이 다 너무 얇고 짧더라고요. 워낙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‘와, 이걸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’ 싶었죠. 근데 배우가 하라면 해야죠.(웃음) 노조미는 전신 메이크업을 해야 했어요. 가발 쓰고 속눈썹 붙이고, 몸 옆에 인형의 봉합된 줄을 그리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죠. 거의 세 시간 메이크업을 해야 해서 아침 5시면 일어나 현장에 나갔어요. 그래도 이 작품, 이 캐릭터 때문에 하는 고생이니까 할 만하더라고요. 그리고 일단 제가 한국 영화 현장에서 좋은 선배님들과 작업을 많이 해서인지 몸에 습관이 잘 배어 있었던 것 같아요. 송강호 선배님 같은 분들께 주연 배우가 어떻게 해야 모든 스태프들이 흥이 나서 일할 수 있는지 많이 배웠으니까요. 제가 춥다고 힘들다고 하면 모두가 힘이 빠질 것 같아서 더 티를 안 내려고 했죠. 그리고 원래 누드 신도 리허설 때는 옷을 입고 하잖아요. 전 살빛에 조명 제대로 맞추고 스태프들이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실제처럼 누드 상태로 임했어요.
-현장에서 정말 최고의 배우셨네요.
정말 한국 배우들은 좋은 연기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. 제가 우리 집에서 촬영하는 것이라면 엄마에게 엄살도 부리고 아빠에게 애교도 떨면서 연기할 수 있겠지만, 일단 집 밖에 나가서는 우리 집 이름을 드높여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. 고레에다 감독님도 베드 신이나 누드 신을 찍는 게 처음이셨어요. 촬영장에 갔는데 감독님 표정이 평소와 다르게 너무 굳어 있더라고요. 오히려 전 <복수는 나의 것>(2002) 등을 통해 경험이 있는 상태였고. 그래서 배우에게 이런 것쯤은 아무 문제도 아니라는 듯 먼저 벗고 농담도 건넸어요.
-고레에다 감독이 배두나 씨를 존경한다고 말할 만하네요.
진짜요? 언제 그런 과찬을. 제가 오버한 거예요. 아마 우리 집이었으면 징징거렸을지도 몰라요. 사실 <청춘>(2000)에서 베드 신을 촬영했을 때만 해도 술도 못 먹는 주제에 소주 반병을 들이켜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연기했어요. 그 정도로 못 견뎌 했던 거죠. 제가 겉으로 날라리처럼 보이긴 해도 그렇진 않거든요. 배우로서의 책임감보다 남 앞에서 벗는다는 게 수치스럽고 여자로서의 갈등이 심했던 적이 있었어요. 근데 연기를 위해서 내가 못할 게 뭐가 있나 하는 생각으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넘어가지더라고요.
-<공기인형>으로 배두나 씨가 배우로서 한층 성숙해진 느낌이에요.
에이, 그렇지도 않아요. <공부의 신> 보셨잖아요?(웃음) 똑같아요. 완급 조절을 하는 거죠. 어떤 작품에서는 편하게 놀고, 또 어떤 작품에서는 나 자신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찍고 그런 여유는 생긴 듯해요. 하지만 아직도 작품을 고르는 부분에 있어서는 여유가 없어요. 지나치다 싶을 만큼 되게 엄격하게 골라요. 드라마는 좀 편하게 해도 영화는 ‘그냥 이 작품 하자’고 할 수가 없더라고요.
-영화와 드라마에 대해 다르게 기대하는 욕심이 있으시군요.
음… 솔직히 영화에 대한 허영이 있는 것 같아요.(웃음) 허황된 욕심이랄까. 흠집 하나 내고 싶지 않은 그런 결벽증.
-그런 마음이 없었다면 <공기인형> 같은 작품도 그냥 지나쳐 보낼 수 있었겠죠.
<공기인형>은 여배우로 살면서 1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였어요. 정말 놓치고 싶지 않았죠. 확실히 나를 그렇게 쏟아낼 수 있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아요. 어떤 작품에서든 자신을 쏟아 부으면 되지 왜 그렇게 작품을 가리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, 어려운 일이죠. 사실 저도 처음에는 노출이 좀 문제였지만 고레에다 감독님의 작품을 언제 또 하겠나 싶었고 안 하면 평생 미련이 남을 것 같더라고요.
-박찬욱 감독이 용기를 주셔서 <공기인형>에 출연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, 어떻게 이 작품을 시작하신 건가요?
박찬욱 감독님이 조언을 해주셔서 제가 무조건 출연 결심하게 됐다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. 이런 적은 있어요. 고레에다 감독님께 시나리오가 들어왔을 때 마침 박찬욱 감독님을 뵀어요. “좀 야하다. 어떻게 할까 고민 중이다” 했더니 박찬욱 감독님이 “고레에다 감독님 작품인데 무슨 역이든 해야지” 하셨어요. 저도 “역시 그렇죠?” 웃었거든요. 용기를 받긴 했지만 그 때문에 출연을 결정하진 않았어요. 다른 감독님들께도 조언을 구했고요. 제가 그래도 고집은 있어서 누가 뭐라 해도 이 작품에는 결국 출연했을 거예요. <공기인형> 이야기를 들은 건 <괴물>(2006) 촬영을 하고 나서였던가. 봉준호 감독님과 고레에다 감독님이 어느 영화제에서 만났는데, 고레에다 감독님이 “배두나를 놓고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 좀 야한 러브스토리다. 괜찮을까?” 물어보셨대요. 봉 감독님이 “그녀라면 괜찮을 것 같다”고 하셨다고 하더라고요.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고레에다 감독님이 저를 만나러 오셨어요. 짧은 시놉시스와 원작 책을 주셨는데 보고 나니 정말 좋더라고요.
© MovieWeek, April 2010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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